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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려한 휴가] / 김지훈(김상경.안성기.이요원.이준기)

큐티 2008. 1. 27. 23:33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감독 :김지훈
*출연 :김상경. 안성기. 이요원. 이준기 그외.

*5개월의 촬영기간과 100억의 제작비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지는 오늘의 폭우만큼.. 펑펑 울면서 봐야 했던 영화

화려한 휴가 - 그날의 <작전명>은 125분이 결코 길다고 느끼지 않을 만큼

촘촘한 이야기 전개로 그때 그 시절 실제 있었던 상황과 어러져 감동과 고통,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쏟게 했다.


과연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명짓고  광주시민을 간첩과 폭도로 만들어 버린

이 사건을 사라져간 이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 것인가...자랑스럽게 생각할까?
그들은 단지 살기 위해 또 가족, 친구를 지키기 위해 싸웠을 뿐이다.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한 도시에 행한 대 학살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몇달 전 캄보디아를 여행하고 온 후 그 나라의 전쟁후유증의 심각성을 보았다.
캄보디아 수상이었던 폴폿의 잔악성으로 인한~ 그 수많은 인재들의 무가치한 죽음

으로 그 나라를 이끌어 갈  리더자의 부재로 아직 후진국을 면치 못해

불쌍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이념의 실현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권력쟁취에 사이코적인 두뇌를 활용하는 정신나간 정치인들의 만행은
국가로선 크나 큰 손실일 뿐이라는 것을....  왜 자국민을 살상해야 하는지~


"모반을 한 사람이 정당성을 얻지 못하면 반역죄가 되기때문에

그 정당성을 얻으려 이런 짓을 한다”고 영화 속의 신부님은 말했다.
예를 들자면~ 조용히 잠들어 있는 강아지를 발로 걷어 찬 후~

'컹컹' 짖으면 조용히 하라며 죽여 버린 후
소란을 잠재웠다며 정당성을 주장하는 꼴이란다.
 
<화려한 휴가>는 연기파 배우들의 총집합으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했다.
지난 5개월 동안  그들은 배우가 아닌 평범한 광주 시민으로 살았을 정도로
1980년 그 당시의 광주 시민이 되어 감정 몰입에 충실했다고~


<실미도>를 통해 1,000만 흥행배우며 <라디오 스타>를 통해

이 시대의 진정한 연기자로 인정받고 있는 안성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로 관객들에게 두 배의 감동을 주는 배우 김상경.
<외과의사 봉달희>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요원.
<왕의 남자>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젊지만 패기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이준기.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그 공동체를 지키려는 순수한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실존인물> 김복만[1952.06.12]- 당시28살▶ 강민우로 재구성(27세/남)_ 김상경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동생 진우를 돌보며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택시 기사.
전교 1등을 하는 동생 진우에게 부모처럼 헌신적인 사랑을 주면서
짝사랑의 상대자 신애에게는 제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광주시민.
그러나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사랑하는 동생과 여자를 위해 역사의 비극에 정면으로 맞선다. 택시운전을 하던 김복만은 시위에 가담했다가 5.21일 도청 앞에서 총을 맞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


<실존인물> 양회남[1950.02.16]-당시30살▶ 강진우로 재구성(18세/남)_ 이준기
 민우의 동생으로 비록 부모님 없이 자랐지만 밝고, 착하고, 모범적인 고등학생.
형의 말이라면 절대 거스르는 법이 없던 진우지만 절친한 친구가 계엄군에 처절한

죽음을 당하자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항쟁에 앞장선다.


화정동집 담밖에서 총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있는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나갔다가
총에 복부를 맞아 사망. 101사격장에 가매장되었다가 망월동으로 이장.


<실존인물> 전옥주▶ 박신애로 재구성(24세/여)_ 이요원
군인 출신의 아버지 흥수와 살고 있는 간호사.
따뜻한 성품을 가진 박신애는 남자 못지 않은 담대함으로

항쟁 기간 동안 간호 요원으로 자진해
많은 희생자들의 아픔을 감싸주고 어루만져준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우와 수줍은 사랑을 만들어 나간다.
1980년 5월 27일 광주 시민군의 최후 항쟁이 있던 날 오후 3시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하자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애절한~ 시내의 가두방송을 했던 주인공.


박흥수(48세/남)▶_ 안성기
예비역 대령 출신으로 택시 회사 사장.
곧은 성격의 소유자로 정확한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아내와 사별하고 하나뿐인 딸 신애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군대의 과잉진압으로 쓰러져 가는 무고한 시민들을 위해 비극의 현장에서

시민들을 통합해 시민군을 이끌어 간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생 잊지 못할 열흘간의 기억 - 1980년 5월. 광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총,칼을 들어야만 했던 아주 평범한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날의 사건과 진실을....


그 당시 어린 아이였거나 태어나지 않았던 젊은 세대들은 5.18의 실제 상황을 영화나 사진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다.  그날 현장에 있었던 광주시민들은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실제로는 대검으로 사람을 찔러 죽였다'며 제작사에 강하게 항의할 만큼 더 끔찍했다고 한다.


1949년 전북 고창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한 김녕만씨는 2001년 '올해의 신문기자상' 을 수상한 사진기자이자 사진작가이다.  5.18현장을 취재해도 보도되지 못할 것을 안 다른 기자들이 철수한 현장에 그는 끝까지 남아 취재하면서 광주의 슬픔을 사진에 생생하게 담았다. 그리고 1994년에 광주사태 당시 보도되지 못했던 사진들을 모아 [광주, 그날]이라는 사진집을 출판했다


"당시 기자로서 가장 큰 자괴감을 느꼈다. 알려야 할 것을 못 알렸을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을 못 말할 때 참담했다. <동아일보>에 사진을 쓰려면 폭도라는 표현을 써야했기에 그럴 바에는 쓰지 말자고 생각해 사진이 나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보도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그는 말했다.


[진실1]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공동 사직서’ (1980.5.20)-


[진실2]  "시뻘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을 군화로 차고 짓이겼다는 것이다.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옷을 벗기고 치고 차고 총검으로 찔러댔다는 것이다.

아 이것이 대한의 국군인가? 누가 이들을 미치게 했나? 국민을 살상하라고 명령한 원흉은 누구인가?"

-'푸른 눈의 목격자'(일요 스페셜 다큐멘터리) 중 김성용 신부의 증언 일부-


[사건1]  도청 앞에 울려펴진 애국가
<화려한 휴가>에는 관객들이 믿지 못할 충격적인 장면들이 몇 있다.
그 중 하나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제창하는 시민들을 향해 무참히 사격하는 계엄군의 모습이다.
실제로 계엄군의 총이 발포 될 당시 광주 도청 앞에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애국가가 계엄군에게는

발포 명령을 암시하는 신호였을 것이라고 추측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발포와 관련된 모든 그날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건2]  주남마을 버스 학살 사건
광주 시민들을 태운 버스 한대가 논길을 달리고 있다.
버스에 탄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사방을 주시하고 있다.
두려움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 반대편에 보이는 군용 트럭.
버스를 발견한 군인들은 트럭에서 내려 버스를 향해 사정없이 사격 한다.
이 끔찍한 장면은 실제 양민학살 사건으로 알려진

주남 마을 미니버스 총격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1980년 5월 23일, 18명의 광주 시민을 태운 소형버스에 무차별 사격을 한 이 사건으로 인해
버스 승객 18명 중 17명이 사망한 참혹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학살 2]  - 김남주 -

오월 어느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 낮이었다

낮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낮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낮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리 치밀하지는 않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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