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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일탈(보호)

♧새로 복원된 <딜쿠샤> 방문

큐티 2021. 8. 31. 15:22

오전 일찍 출발하여 서대문역에서 내렸다
비가 올듯 말듯한 날씨에 초록초록한 숲길을 걸어 사전예약해 둔 딜쿠샤를 찾아갔다
낯선이름인 '딜쿠샤'의 의미는 기쁜마음의 궁전이란다
이곳은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1923~1942년 일제의 외국인 추방령이 있기 전까지 
거주했던 곳으로~ 부인 메리가 '러크나우'를 여행하는 중 인도의 멋진 궁전(딜쿠샤)에 반했고
한국에서 결혼생활을 하게 되면서 행촌동 은행나무 옆에 집을 지어 그 궁전과 같은 이름으로 짓는다
그들이 추방된 후 딜쿠샤는 계속 방치된 채로~ 거의 노숙인의 주거지처럼 되어 있었던 곳이다
그러다가 올해 2021년 3월1일에 깨끗하게 원형으로 복구되어 전시관으로 개관했다 

앨버트의 부친 '조지 알렉산터 테일러'는 광산기술자로 그의 두아들 '앨버트'와 '윌리엄'을 데리고 
1897년에 조선에 들어오고 아들들은 '테일러 상회'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자리잡고 결혼도 한다
1919년 1월21일에 고종이 승하하여 3월초에 장례식을 했는데 
메리는 2월말에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들을 낳은 후 창밖으로 장례식을 보았다고 한다

앨버트와 메리 사이에는 1919년에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난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있다
앨버트는 아이가 태어날 때 세브란스 병원의 산모침대 밑에서 종이뭉치(독립선언서)를 발견하고
동생 윌리엄에게 부탁하여 이 내용이 미국에 알려지게 되고 드디어 뉴욕타임즈에 실리게 된다
일제에 의해 모든 주도권을 빼앗겼던 우리나라의 소식을 
특파원의 자격으로 국외에 알려준 고마운 앨버트의 가족들이었다

앨버트의 부인 메리는 일제로부터 가택연금을 당했을때 함께 일을 도와준 한국인들의 초상화도 그렸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앨버트도 수용소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나 가족 모두 국외로 추방당한다
앨버트는 다음해에 캘리포니아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메리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1948년 9월에 남편의 유해를 안고 와 서울의 양화진에 안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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