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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량] / 김한민(최민식.류승룡.조진웅.김명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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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량] / 김한민(최민식.류승룡.조진웅.김명곤)

큐티 2014. 8. 8. 23:00

 

 

 

 

 

내 마음 속에 기록된 멋진 남자의 표상~!
그는 바로 이순신이다.

 

입추가 지난 오늘은 아침 저녁으로는 가을날씨처럼 선선하다.
초가을의 산들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저녁에 '명량'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명량해전 당시의 상황은 일본군측의 거짓 정보와 서인 일부의 모함에 의해
이순신은 파직당하고 대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원균은 칠전량에서 대패했고 이순신은 다시 복직한다.

 

칠전량 대패 후에 남아있는 배는 겨우 12척과 용기를 잃어버린 군사들 뿐..
1597년~ 그래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백의종군하여 민초들과 해류의 도움을 받아
이순신은 유리하게 싸울 수 있는 바다인 명량해협을 선택하여
전라 좌수영에서 우수영으로 옮기는 작전을 했다.

 

왕에게 버림을 받으면서도 그는 바다의 장군으로 남아 백성을 지켰다.
'내가 바다를 포기하면 도성을 포기하는 거와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육군에 합류하라는 어명을 어기고 끝까지 바다를 지켜냈던 것이다.

 

12 : 330 이라는~ 전혀 불가능한 전쟁임을 눈 앞에서 지켜보며

이순신과 그 아들 '이회'와의 대화가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하다.

 

"아버님~ 이 싸움을 계속 진행하시렵니까?"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忠을 따라야 하고
그 忠이란 임금이 아니라 백성에게 있다"

 

신하가 추구하는 것이 임금이 아닌 백성에 대한 의리라니~!
이회의 눈동자가 커지며 묻는다.

 

"임금이 아니고 백성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언제나 백성이 최우선이고 맨 마지막에 임금이 있을 뿐이다"

 

"저 백성은 저 살기만을 바랄 뿐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습니다.
저 들풀같은 백성들에게 무엇을 바란단 말입니까?"

 

"만일 저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천배.백배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런 대화를 한 후에 이순신은
300척이 넘는 많은 수의 적군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진하나 후퇴하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나라를 지켜내며 용감하게 죽자" ~
라며 용기를 북돋운다.

 

이순신의 전략은 해류가 아군쪽으로 흐르면 왜군이 다가오도록 기다렸다가

일자진으로 화포공격을 한다.


▶참고: 일자진(一字陣)-좁은 바다길목에 배를 (一字)로 배치하여 왜군공격에 맞서는 전술
          충파(衝破)-배와 배를 부딪혀 침몰시키는 전술
          백병전(白兵戰)-왜군의 전술로 적의 배에 올라타 칼.총으로 싸움

 

다시 해류가 바뀌어 반대쪽으로 흐르면 그 해류를 따라 쫓아가며 후퇴하게 하는 전투를 한다

그러나 해류를 따라 앞으로 전진하며 싸워야 할 아군의 배는 꿈쩍도 안하고
이순신이 타고 있는 배만 왜군을 향해 돌진하여 330척과 맞서 싸운다.
뒤에서 떨고 있던 11척의 배에 타고 있던 병사들도 이순신의 용감한 모습을 본 후에
동네 민초들의 마음까지 모두 움직여 그들의 두려움이 큰 용기로 바뀌며 같이 싸우게 된다.

 

그순간 울돌목 해류의 소용돌이로 이순신이 타고 있던 배가 물살에 휩쓸리려는 순간에
민초들이 모두 배를 타고 나와 이순신의 배를 구해내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12척과 330척과의 전투에서 외로이 홀로 전두지휘를 해야 하는...
그 고뇌하는 눈빛의 이순신의 모습을 보며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

 

모든 것을 수동으로 해야 하는~ 배의 위와 아래에서 죽을만큼 고생했던 그들의 수고로 인해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건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고마움이 앞설 뿐이다.

 

배 아래에서 노를 젓는 노꾼들이 잠시의 휴식을 취하며 하는 대화가 있었다.

 

"나중에 우리 후손 아그들이 우리가 이리 개고생헌 것을 알기는 알까?"


"모를 리가 있나?    이순신장군의 위업을 그들이 어찌 잊겄는가?"


"그 위업에 우리 민초들의 노고도 쪼까는 생각혀 주겠지?"


"암먼~"

 

참으로 멋진 이순신장군~!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현 시점에서 이 분과 같은 사람은 그 어디 없을까?

 


 

 

★이순신장군


 
1545년 4월 28일 한성부건천동(서울 인현동)에서

          부친 덕연군 이정의 사형제중 셋째아들로 태어남
1598년(선조31년) 11월 19일 전순하심

 

- 32세 : 함경도에 초급장교인 권관(權管)으로 임명됨
- 36세 : 전라도 발포만호(鉢浦萬戶)로 임명 (포구 수비)
- 38세 : 만호에서 파직당함(시기하는 무리때문에 모함으로)
- 39세 : 복직되어 함경북도 권관으로 근무
         호적(胡賊)의 괴수(魁首) 울지내를 사로잡아 양민을 보호함.
- 42세 : 조산만호(造山萬戶)가 됨
- 43세 : 록도둔전(鹿島屯田)을 관리하는 중에 호적의 습격을 받아
         60여명이나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것을 구출하다가 화살을 맞고
         좌고(座股)에 상처를 입었으나 도리어 모함을 받고 투옥됨
- 45세 : 전라도 정읍현감에 태인관을 겸함
- 47세 : 유성룡의 천거로 마침내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에 부임하고
         장차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직감하고 권한과 범위내에서 전쟁준비에 열중하심.
- 48세 :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 5월 07일 : 제1차 옥포해전 대승첩(對勝捷)
       ▷ 5월 29일 : 경상도 사천에서 승첩
       ▷ 6월 02일 : 제2차 당포해전 대승첩
       ▷ 7월 08일 : 제3차 한산도대승첩- <학날개 전법> 서해로 가려는 왜적들을 완전소탕. 
       ▷ 9월 01일 : 제4차 부산대승첩
- 49세 :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임
- 50세 : 전염병으로 십여일이나 고통을 당함
- 52세 : 적군의 음모와 원균의 시기로 서울로 압송
- 53세 : 정탁(鄭琢)의 상소문이 주효하여 석방, 백의종군함 다시 통제사로 복직,
            여병(余兵) 백여명과 12척의 전함으로 결사항전하기로 맹서함.
      ▷1597년 9월 16일 : 명량해전대승첩, 울독목에서 30척 격파
- 54세 : 1598년 8월 17일 풍신수길이 죽으매 왜적의 철군 시작
      ▷ 왜함 500여척을 추격하여 남해 노량에서 큰 격전을 벌였음. 
      ▷ 11월 19일 - 밤새 독전하다가 날이 샐 무렵에 탄환을 맞아 전순(戰殉)하심,
            임종시 유언에 따라 전투가 끝난 뒤에 발상(發喪)이 마지막 격전으로 적은
     크게 패하여 500여척의 전함중 겨우 50 척만이 남해로 달아나 7년간의 임진란이 종식됨.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장군이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전쟁 중에 쓴 일기(난중일기)에 기록된 - 30전 30승의 불패의 신화~!

 

1. 옥포해전     - 왜선  26척 분멸

2. 합포해전     - 왜선    5척 분멸

3. 적진포해전   - 왜선  11척 분멸

4. 사천포해전     - 왜선   13척 분멸

5. 당포해전     - 왜선   21척 분멸

6. 당항포해전   - 왜선  26척 분멸

7. 율포해전     - 왜선  10척 분멸

8. 한산도대첩     - 왜선  59척 분멸 , 왜군 8,980명 전사

9. 안골포해전   - 왜선  42척 분멸

10. 장림포해전  - 왜선  6척 분멸

11. 화준구미해전- 왜선  5척 분멸

12. 다대포해전  - 왜선  8척 분멸

13. 서평포해전  - 왜선  9척 분멸

14. 절영도해전  - 왜선  2척 분멸

15. 초량목해전  - 왜선  4척 분멸

16. 부산포해전  - 왜선  128척 분멸

17. 웅포해전    - 왜군 100명 사살

18. 2차 당항포해전

19. 오리량해전

20. 저도해전

21. 진해해전    -  31척 분멸

22. 장문포해전  - 조선수군의 일방적 공격

23. 영등포해전  - 조선수군의 일방적 공격

24. 2차 장문포해전 - 왜선  2척 분멸

25. 어란진해전  - 왜선  8척 도주

26. 벽파진해전  - 왜선  13척 도주

27. 명량해전    - 왜선  31척 분멸,  90척 반파 도주

28. 절이도해전  - 왜선 50척 분멸, 50척 반파

29. 장도해전    - 왜선  30척 분멸, 11척 나포

30.노량해전     - 왜선 450척 분멸   왜군 40,000명

 

 

 

[임진왜란의 3대 대첩]

◆한산도 대첩 - 1592년 7월 8-9일에 걸쳐 이순신 장군이 왜적선 70여척을 한산도 앞바다에서 전멸시킨 대첩이며 이로써 이순신장군은 바다에서는 누구도 넘볼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어 왜군을 이 후로 몇번씩이나 무찔러 역사에 남을 커다란 승리를 세우고 일본의 북진을 저지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주대첩 - 1592년 10월 5일 3만명의 왜군이 조선 남부의 요충지인 진주성에 쳐들어 오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김시민은 끝까지 진주성을 지켰다. 이 진주성 싸움은 임진왜란 이래

조선군이 거둔 첫번째의 커다란 승리였다.
 

◆행주 대첩 - 1593년 2월 전라도 순찰사 권율이 수원에 진을 치고 있다가 왜군이 점령한

한양을 되찾기위해 행주산성에 집결하였다. 이에 왜군 3만여명이 쳐들어왔으나 군관민

(특히 행주치마를 사용하여 돌멩이를 날랐던 부녀자의 힘이 결정적이었음)까지 동원하여

왜군을 무찌르니 왜군은 이 후에 한양에서 퇴각하게 되었으므로 한양회복에 그 의의가 있다.
 

 

 

[이순신장군의 약속이행]
순신이 젊은 시절 공부를 할 때였다.
어느 날 한 낯선 사람이 이순신을 찾아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자기 딸이~ 물에서 목욕하는 이순신을 우연히 보고
상사병이 들어 죽을 지경이 됐는데 죽기 전에
꼭 한번 만나보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마침 그날 집안에 일이 있던 터라
다음날 그 집에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밤사이에 큰 비가 내려
강물이 크게 불어나고 말았다
이순신이 그 집에 가려고 길을 나섰으나
아무리 해도 물을 건널 방도가 없었다

결국 하루를 더 지체하고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처녀의 집에 이르렀는데, 도착하고 보니 이순신을
기다리던 처녀가 설움을 못 이겨 세상을 떠난 뒤였다
한을 품고 죽은 처녀는 커다란 뱀이 되었다고 했다 
 
처녀의 부모가 만류했으나
이순신은 처녀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며
그 곁에서 밤을 지내겠다고 뱀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순신이 방으로 들어가자 뱀이 그 몸을 칭칭 감았다
이순신은 뱀의 행동을 말없이 받아주었다

이순신의 몸을 꼭꼭 감고 있던 뱀은 다음날 날이 밝자
스스로 몸을 풀더니 전날 이순신이 목욕하던 물속으로
스며들어가 용이 되었다
이후로 용은 이순신을 따라다니며
그를 지켜주고 도와주어서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처녀가 이순신을 만나기를 소망한 것은
명분이 없는 평범한 욕망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이순신으로서는 무시해도 그만인 일이었다
그 뜻을 받아주기로 하면 오히려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터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명분을 따지기에 앞서
한 인간의 애절한 소망이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그 마음 받아주고 풀어주는 것
그것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예의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처녀의 집으로 향하였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누구라도 그리 할 수 있겠다.
놀라운 것은 그 뒤의 일이다
뱀으로 변한 여인과 밤을 함께 지낸 일 말이다
그 집을 찾아오기 위해 최선을 다한 터이니
할 일 다 했다고 돌아설 수도 있으련만
이순신은 끝까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버리지 않았다

징그러운 뱀이 도사린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의 몸을 감는 뱀의 행동을 묵묵히 받아주는
그의 행동은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 선택을 통해
원한은 거꾸로 은혜가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전설이 전하는 인간사의 섭리다

저 이름 없는 한 여인을 ...
진정으로 품어주고 지켜주는 존재였으니
이 땅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군사들의 안위를
책임지기 위해 오죽이나 마음을 쓰고 노력했을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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