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아란 가을하늘..  찬란한 햇살..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이 부는 토요일의 주말..♡ 
하얀 뭉게구름 벗삼아~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사과밭을 보며 우리 애와 함께 한 가을여행~!
아름다운 경치를 검색하다 보니~ 성당과 절이 눈에 띄어 내비에 저장하고 길을 나섰다.

우선 음성의 감곡매괴(붉은장미)성당을 천천히 산책하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졌고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괴산I.C로 들어가 [박달산 가든]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인터체인지에 근접해 있는 이 식당의 앞마당엔 탐스런 빨간사과가 주렁주렁...
물론 그림의 떡이고 천정에 매달린 굴비 격이지만.. 사진을 찍어 눈으로 먹어 봤다는 기쁨이!
 

▲ 빨간 점을 찾아 여행한 코스

▲ 음성군 관광안내도



매산자락의 감곡매괴성당은 1896년 프랑스출신의 임가밀로(감곡성당 제1대 신부님)의
기도로 이룩된 유서깊은 감곡성당. 조선시대 때 이 곳에는 명성황후의 6촌오빠인 민응식의
대궐같은 집이 있었고 1882년 임오군란에 명성황후의 피신처 였다가 1895년 시해당한 후에
그 집은 불태워 지고 그 자리에 성당이 지어 졌다고 한다.


임가밀로 신부님은 일제치하에서 성당옆에 학당을 세워 억압받는 아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우리 말을 잊지 않게 가르쳐 민족의 뿌리가 마르지 않게 도와 준 분이셨다고~
성당 안의 매괴성모상은 프랑스에서 제작하여 가져와 제대 중앙에 안치되었고
6.25전쟁 때 상처난 7발의 총구멍이 있지만 부서지지 않고 아직까지 건재하다고 한다.
또 성모광장은 1943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신사참배터를 닦으려고 했던 곳인데
계속되는 천재지변으로 그들의 작업은 무산되고 말았다고 한다.


충북 유형문화재 제188호이며 1930년에 완성된 고딕양식건물 본당의 중앙종탑에선
미사시작 때마다 종소리가 고요히 울려 퍼진다는 이 성당에선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마음에 평온함을 안겨주는 곳 이었다.
예수님의 골고다 언덕을 재현한 산상 십자가의 길인 14처의 산책길이 참 아름다웠다.


▲ 감곡매괴성당 전경

 



▲ 매괴박물관


▲ 초대 신부님인 임가밀로 신부님의 소지품들



▲ 매괴박물관은 지하1층 부터 지상2층까지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 골고다언덕을 재현한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며 경건한 마음으로 묵상을~

▲ 박달산가든 식당의 탐스런 사과들!


▲ 무심사를 찾아 가는 길목에 있던 괴산의 사과밭에서..

▲ 무심사 입구의 코스모스 들판에서..



3년 전 TV의 매체를 통해 인간극장에서 소개된 박달산 자락의 무심사는
각각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들어 온 동자승들이 있어 유명한 곳이다.


가장 맏형 뻘인 16세의 묘법스님부터 가장 어린 4살 묘우스님을 비롯한 동자승들은
어린나이 때부터 욕심을 버려야 하는 무심을 배우고 있는 곳일까?
부디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아름다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기도하는 마음 뿐~


승용차 한대만 오르내릴 수 있는 농로의 아주 좁은 길을 따라 무심사에 도착하니
너무도 예쁜 코스모스가 먼저 반긴다.  날씨의 화창함에 맑게 씻긴 산사의
식당 앞 정자에 앉아 있노라니 시원한 바람과 탁트인 경치에.. 아! 행복해!
조금 있으니 저 아래 길목에 학교수업이 끝나서 오고 있는 동자승들이 보여
천진난만한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본다.
나에게 요즈음 너무도 와 닿는 글귀가 있어 옮겨 본다.

 
내 것이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손해란 있을 수 없다.
또 내 손해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겐가 이익이 될 수만 있다면 그 것은 잃은 것이 아니다.
- 법정스님의 무소유 중에서-



▲ 무심사의 어린 천사들인 동자승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 괴산고추축제가 열리고 있는 곳을 잠시 통과하면서~

▲ 공림사 입구에서..


낙영산 자락에서 천년세월을 안고 있는~ 괴산에서 가장 유명한 고목인 느티나무를 만나러
공림사(법주사 말사)를 찾았다. 아름다운 산천이 공존하는 사담계곡 부근의 이 절은
가는 길목이 잘 닦여져 있었고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공림사는 신라 48대 경문왕 때 작은암자에서 정심수도하는 자정선사의 법력과 덕화가
세간에 알려지자 왕이 그에게 입궐을 청하였으나 사양하였고 왕은 선사의 도덕에 감동하여
사호를 공림사로 칭하게 하였다고 한다.
선조 20년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군들이 이 절의 웅장함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불화살을 쏘아 불을 질렀으나 바람이 불길을 돌려 대웅전은 보존되었고
또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들이 절에 거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남한군들이 천년고찰에
또 불을 질러버린 파란만장한 참사를 겪은 절이었다.


입구에 도착하여 올려다 보이는 낙영산 정상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암봉은
정말 환상적 이었다. 사방으로 구비구비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둘러처진 이 곳은
천년수령의 느티나무와 함께 경건함과 편안함이  저절로 느껴지는~
또 다시 찾아오고 싶은 절 이었다.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장독대 위에선 누룽지를 말리고 있었는데
얼마나 맛 있어 보이던지~ 너무 아름다운 경치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공림사의 넓은 잔디밭 위에서 햇빛소독을 하고 있는 이부자리들마저 정겨웠다.




▲ 천년고목의 느티나무와 함께

▲햇살에 빛나던 장독대 위의 고소한 누룽지


▲ 느티나무와 아담한 바위는 천년동안 계속 친구였을까~?




▲ 공림사의 뒷뜰

▲ 햇살이 찬란해서 잔디밭 위의 이부자리들 마저 아름다웠다.





▲ 공림사 한 쪽에 있던 구멍뚫린 나무


 

▲ 법주사 찾아가는 길목의 푸르른 들녘

정2품 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
2002년 나무결혼 사기극에 휘말리기도 했던~ 또 서울 우면산 산사태도 전해 들었을~
고령의 이 소나무는 인간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제발 인간을 위한 자연이 아닌... 자연을 위한 자연으로 되돌려 달라"~고



다시 찾은 속리산 자락의 법주사는 주차비와 입장료가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 애가 가보고 싶어 해서 예정에 없었던 코스였으나 그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정2품송도 옆가지를 잃은 채로 잘 자라고 있었고 법주사 안의 아름다운 미인송은
더욱 고결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큰부처님 동상 아래의 건물로 들어가면 작은 불상들이 많이 있어서 뭐냐고 여쭈었더니~
각자 자신의 복을 비는 부처님을 백만원씩에 구입해서 보관하는 장소라고 한다.
법주사는 워낙 넓어서 한바퀴 돌아나오는 데도 약 40분이 걸렸다.


찾을 때마다 정말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느껴졌던~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 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법주사에 정답게 서 있는 미인송  2그루


▲ 벽면에 '팔상도'가 그려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목조탑인 팔상전




▲ 미륵 3천불이 봉안된 지하공간









▲ 거대한 바위를 밀어 보겠다고~ 아서라!  아그야!




▲ 찬란한 이 가을빛과 색깔들의 조화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행복했던 하루였음을..
Posted by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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